이순규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장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이 나 아닌 이웃과 국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봉사하고 사랑하는 방법과 정도도 모두가 같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또한 천차만별로 변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권이 외세의 강압에 의하여 침탈당했을 때 일신의 안위와 영화를 돌보지 않고 헌신･희생한 순국선열이 있었던 반면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조국을 버리고 부귀를 쫓는 사람도 있었다. 조국수호의 과정에서도 고귀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산화한 충혼의 넋이 된 수많은 분이 있기도 하였지만 권력에 눈이 먼 많은 사람 또한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풀잎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민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고 소리 없는 아우성과 희망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끈질긴 우리 역사의 모습처럼 늘 우리와 함께 지금도 이 땅에 숨 쉬고 있다. 한 때 그들의 모습은 내 옥토와 내 가족을 위하여 나라의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달려나가 의로운 군인이 되어 목숨을 바쳤다. 군주의 무능함으로 나라의 힘은 고갈되고 백성은 돌보지 않은 채 먼저 남의 힘에 의지했고 남의 땅으로 일신을 보전코자 앞장서 도모하기도 했다. 그 결과 뼈를 묻고 살아온 그들은 터전을 뒤로한 채 이역만리 타국의 땅 시베리아로 만주로 기약 없는 이주를 해야만 했던 행렬이 되었다가 우리와 무관한 전쟁과 노역에 휘말려 이용당하고 어딘지도 모를 벌판에 버려지거나 추위와 배고픔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끊어진 한강철교를 잇는 인간띠가 되어 동토로 변한 한강을 건너는 길 잃은 무리가 되기도 하였던 그 날들이 지금, 오랜 세월 역사의 이름이 되어 유월을 또다시 맞고 있다.

이제 산야는 손에 손에 꽃을 든 오색의 추모와 위로의 마음으로 이어진 물결로 하나가 되고 있다. 진혼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 땅에는 너와 내가 갈라지는 슬픔이 없고 시기와 미움으로 멀어진 갈등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가진 자와 부족한 자의 다툼이 해소되고 공평한 기회가 약속되며 노력한 만큼의 가치가 공정하게 평가되는 꿈이 있고 희망이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염원하고 있다. 누구는 그랬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우리 민족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은 ‘희망’뿐이다. 희망이 없는 민족에게 조국을 위한 충의로움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알량한 것인가”라고.

유월에는 그토록 갈라진 아픈 상처가 아물고 이해와 사랑으로 갈등의 매듭이 풀어지고 깊게 패인 골이 하나둘 메워져 희망과 기쁨이 가뭄의 단비처럼 내리는 날이길 염원해 본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 나라 위한 헌신과 희생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국충정의 꽃만은 얼마나 명예롭고 희망을 부르는 기쁨이었는지 깨닫는 날이 되고 싶다. 아직도 어느 시인의 시구가 가슴속을 파고 든다.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이 하늘 아래 아픔 없이 피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듯이 유월은 이렇게 아픈 고통과 슬픔을 나누며 하나 되는 따뜻한 보훈의 마음으로 모두가 서로를 축복 되게 하는 날이 되면 좋겠다. 우리에게 하나 되는 대한민국도 그리 멀리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장 이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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