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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옛날 직업에 대한 이해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논어’에는 “옛것을 되새기어 새것을 살필 줄 알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됨직하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말이 있다. 여기서 ‘온(溫)’에 대해 정현(鄭玄)은 ‘고기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 했고, 주자(朱子)는 “찾아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알아야 된다는 뜻도 되고, 과거를 잘 알아야 현실을 보다 정확히 알수 있다는 뜻도 있다. 그런뜻에서 우리나라에 옛날에 있었던 직업들을 알아보려 한다.

①훈장: 서당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설 한문 교육기관이다. 서당 외에 학당, 사숙, 학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당의 교육내용은 ‘강독’, ‘제술’, ‘습자’가 있었다. ‘강독’은 책의 문장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는 일이요, ‘제술’은 5언절귀, 7언절귀 등 시를 짓는 법이며 ‘습자’는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해서체, 행서체, 초서체를 익혀 나가게 했다. 훈장(선생님)은 매일 학동의 실력에 맞게 범위를 정해 교육했으며 학동은 그것을 외우도록 했다. 옛날 선비들은 서당을 거쳐 향교에 들어갔고 뒤에 성균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②도공: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배워보자 청자는 푸른빛의 도자기요, 백자는 흰빛이 나는 도자기이다. 진흙으로 빚은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는데 유약 속의 철분이 센 불에 닿으면 푸른색이 난다. 중국 송(宋)나라에서 배워왔는데 고려청자(상감청자)는 송나라에서도 칭찬한 자기였다. 이렇게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을 도공(陶工)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의 도공들이 일본에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기도 했다.

③보부상: 옛날에는 화폐 대신 짐승 가죽이나 조개껍질, 돌, 알곡등을 사용하거나 물물교환을 했다. 고려, 조선 시대엔 쌀, 삼베, 무명이 돈처럼 사용되었다. 고려때엔 ‘저화’라는 종이돈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러다가 1678년 ‘상평통보’란 돈이 만들어지면서 일반화 되었다. 물건을 갖고다니며 물물교환을 했던 사람들이 ‘보부상’들이었다. ‘부상’은 주로 소금이나 건어물, 미역, 무쇠솥, 옹기, 나무제품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을 다루었다. 일명 ‘등짐장수’라고 했다. ‘보상’은 주로 옷감, 종이, 바늘, 빗, 장신구 등과 같이 부피가 작고 가벼우나 비교적 비싼 것을 다루었다. 보자기에 싸서 질빵에 걸머지고 다녔기에 일명 ‘봇짐장수’라고 불렀다. 보부상은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를 합해서 부른 직업 이름이었다.

④기생: 옛날 기생은 재능과 교양을 모두 갖춘 멋쟁이 여인이었다. 황진이는 송도 기생으로서 ‘송도삼절’에 얽힌 일화를 남겼다. 옛날 송도에는 고고한 인품을 지닌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송악산 지족암에서 도를 닦고 있던 지족 선사이고, 또 하나는 당시 대학자였던 화담 서경덕 선생이었다. 그러나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화담 서경덕은 황진이의 끈질긴 유혹에도 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송도에 세 가지 유명한 것이 있는데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가 그것이다. 서경덕과 황진이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시조작품들을 남겼다. 고려때엔 ‘교방’, 조선 시대엔 ‘기생청’이 있어 기생을 길러냈는데 시와 그림과 글씨를 가르쳤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논개, 계월향, 산홍같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도운 의로운 기생들도 있었다.

⑤백정: 북방 유목민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백정은 ‘양수척’ 또는 ‘화척’이라 불렀다. 수렵과 목축에 뛰어나 소나 말을 잡는 직업을 택했다. 가축을 잡는 일 외에 버드나무를 엮어 생활 도구를 만들던 고리백정, 가죽신 등을 만드는 갓바치, 사형집행을 맡던 망나니, 악기연주나 노래, 또는 춤 솜씨로 구걸하던 창우등도 있었다. 당시 사회 풍습으로는 천하게 여겨 명주옷을 입을 수 없고, 망건을 쓰거나 가죽신을 신을 수 없고 검은 갓을 쓸 수 없어 ‘패랭이’라고 하는 엉성하게 엮은 대나무 갓을 썼고, 새끼줄을 그 끈으로 사용하게 했다. 죽어도 상여를 탈 수 없고, 묘지도 일반인과 떨어져 따로 써야 하고, 결혼 때도 말이나 가마를 타지 못했고, 여자인 경우엔 비녀를 꽂아 머리를 올릴 수 없었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명종 때 인물로 양주의 백정 출신이었다. 홍길동, 장길산, 임꺽정은 조선의 3대 의적으로 불린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백정은 천민(賤民)이라는 신분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지금은 정육점에 가서 옛날 일을 생각하면 안 되는 시대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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